개에 대한 변명

요즘들어 부쩍 부드러운 의미에서의 개같다, 에서부터 좀 더 단정적으로 너는 개새끼다, 라는 말까지 등등을 자주 듣고 있다. 그렇다면 바로 그 '개'는 무엇이며 나의 무엇이 개와 일치하며 이는 합당한 판단인가.

누구나 파블로프의 실험을 알고 있을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는 종이 울리면 침을 흘린다. 이른바 조건반사라는 것이다. 물론 발화자들이 이를 염두에 두고 있을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개같다부터 개새끼다, 까지 모두 이 파블로프의 개와 함께 이야기 될 수 있다. 종이 울리면 침을 흘리는 개라니, 얼마나 간단 명료한가. 개의 욕망은 숨겨지지 않고, 가장 단순하고 직선적인 방법으로 표현된다. 다시, 개같다와 개새끼의 문제는 솔직하고 순수하다 부터 원초적이고 단순하며 지x대로다 부터까지 의미연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정한 조건 하에서의 순수는, 다른 상황에서의 지x대로와 연결될 수 있다.

다시, 실상 이 유명한 실험에서 종소리와 강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것은 개가 아닌 파블로프 자신이다. 개에게 종소리는 그것이 고깃덩어리의 기표로서 행세할때까지만 의미있다. 개는 절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녀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기표인 종소리가 아닌 진정한 욕망할 만한 대상, 오로지 고깃덩어리 뿐이다. 그에 반해 파블로프야말로 종소리에 강하게 종속되어있다. 그는 종을 울리고, 그 종소리에 맞춰 개에게 '고기를 준다'. 그리고 거기서 지식을 얻고 스스로에게 만족한다. 
그는 스스로 종소리와 타액 분비의 연광성에 대한 작인 그 자체, 실험 그 자체이다. 그에게는 종도, 타액도, 고깃 덩어리도 모두 기표이고 실험은 기표들의 놀이이다. 그리고 그는 이 놀이를 즐기면서 알고 있다고 가정되는 주체, 과학의 주체로써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인한다. 개는 자신에게 필요할 때만 고깃덩어리와 종소리를 연합하지만, 파블로프에겐 고깃덩어리와 종소리의 연합이 '필요하다'. '개는 조건반사 하지 않는다. 조건반사가 필요하고, 조건반사 하는 것은 파블로프 자신이다.'

다시한번, 파블로프의 개에게 고깃덩어리는 명백한 욕망의 대상이며, 그/녀는 절대 이것을 포기할 줄도 모른다. 실험대에 침을 질질 흘린다고 파블로프 아저씨가 엉덩이를 걷어찬다거나 하는 것을 그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녀는 이런 실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는 타자의 욕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쯤에서 '나'는 개와 같은가, 라는 물음에서 좀 더 급진적인 질문으로 나가고자 한다. '인간'은 '개'와 같이 살 수 있는가. 스스로 개처럼 살기를 원했던, 시장바닥에서 자위하던 디오게네스 조차도 개는 아니었다. 그 또한 자신이 개로 '보이는데서' 자신의 '즐김'을 얻었다는 것이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이다.

알렉산더한테 개기던 인간도 노력했자만 결국 개가 될 수는 없었는데, 하물며 나같은 범인이 어찌 개와 같은 삶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사실 진정한 개가 되어 지식과 보여짐, 타자에게 얽메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목표로 삶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같은 의미에서 나는 아직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관계의 얽힘 속에 고통 받는 사람이며, 개가 아니다.

고로, 개같은 놈, 이라는 지칭에 대해서는 좀 더 노력하라는 질책으로 알고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겠지만 이 개새꺄, 는 분수에 맞지 않아 감히 받아들일 수 없다, 라는 말 정도가 하고 싶은걸지도 모르고.


p.s : 닷새째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나혼자 열대야인가. 남들은 어떻게 다들 잘 자는지 어쩌는지 모르겠다. 이런 개같은...

by pulse01 | 2007/07/09 04:17 | academic animal | 트랙백 | 덧글(5)
뱃속에 칼을 넣고
체해버렸네.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겠지. 그건 싫었어.
by pulse01 | 2007/07/06 18:26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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